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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57 신복리마을 - –아담하고 한적한 마음의 고향
  • 기사등록 2021-07-12 13: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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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리 32x65cm 한지의 수묵담채 2019

2016년 처음 부안 곰소작업실에서 고향 풍경 작업한다고 내려와 찜질방에서 20개월을 생활하였다. 이후 멋진 곰소 지인의 펜션에서 6개월간 신세를 지다가 보안면 신복리 농가주택에 전입신고를 하고 2월에 둥지를 틀었다.

신복리는 부안읍에서 16km 정도의 영전사거리 원형교차로에서 부안 청자박물관을 지나 좌측에 위치한 마을로 바닷가와 근접한 아담하고 한적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작품 속의 풍경은 토방에서 바라본 것으로 작품 속의 주택은 신복리 이장이신 최정규씨 댁이다. 부인이 취미로 키운다는 다육이 온실장도 있는데 취미는 넘어선 듯하다.

신복리 마을이 위치한 보안면은 전라북도 부안군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정읍의 고부면과 접하고 있고, 남으로는 줄포면과 줄포만에 접하고 있다. 서편으로는 진서면을 접하고 서북으로는 변산을 등지며 상서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면서 10개의 행정리와 4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밭이 많고 논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으로 신북리 마을 초입은 밭들이 대부분이지만 마을 앞은 간척지로 생긴 논들이 넓게 펼쳐져 있으며 문화유적지가 다양한 편이다. 신북리 신활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천마산 줄기의 구진마을 방향으로 외딴 집에서 서쪽으로 300m 지점 언덕 위에 가마터가 한 곳이 위치해 있다. 출토되는 자기편들은 대부분 접시, 완, 대접

이 대부분 출토됐다.

신복리 주변 우동리, 광활리, 남포리에도 지석묘를 비롯한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으며 유천리와 신복리 감불 등에서는 도자기를 구웠던 가마터들이 많다. 특히 세계적인 명품 도자기로 꼽히는 고려상감청자(高麗象嵌靑瓷)도 이곳 유천리에서 구웠었다. 또 조선 후기의 큰 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은 우반동에 은거하면서 명저 28권을 비롯하여 20여 종의 저서를 저술하여 이 땅에 실학의 씨를 뿌린 곳이기도 하다.

신복마을은 본래 전부 바다였으나 조선 말엽부터 김해김씨 3~4대가 정착하면서 간척사업을 하여 농사를 짓고 바다에서 바지락, 굴, 맛 등을 잡아 이웃 마을과 물물교환을 하면서 살

아온 마을로 이후 평산신씨, 남양홍씨가 들어와 배를 만들고 바다고기를 잡아 생활하였다고 전한다. 지금은 경향 각지에서 각 성씨들이 들어와 모여 살며 간척사업을 확대하여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었다. 간척 후 처음에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던 바닷가라서 염분이 심하고 수리시설이 미흡하여 흉년이 매년 계속되자 흉년을 덜어 복을 많이 달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신복리(新福里)’라고 지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신복마을 앞에 조그마한 섬이 하나 있었는데 지명이 고목나무같다 하여 목섬이라 불리웠으며, 동네 아낙네들은 밀물 때는 물에 잠겨 개똥만큼 보이면서 가깝게 보이고 썰물 때는 점점 멀리 보여 똥섬이라고 하였다.

마을 앞에 있는 바닷가 제방둑에 안개가 내리는 날이면 수묵화처럼 아름답다. 마을을 둘러싸고 붉은 황토밭 야산은 정겹기 그지없다. 집 앞 대문에서 좌측으로 바라보면 곰소만 갯벌이 펼쳐 보이고 중간에는 호암마을이 멋스럽게 펼쳐져있다. 이 멋진 풍경을 입주기념으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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