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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58 유천리 호암 마을 - –고요함이 스멀스멀 묻어나는 고향
  • 기사등록 2021-07-14 17: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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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리의 겨울 106x175cm 한지의 수묵담채 2018

작품 속의 아름다운 호암마을은 부안읍에서 줄포 방향으로 16km를 진행하다 영전 회전사거리를 지나 곰소방향으로 가다가 부안 청자박물관 가기 전 서쪽으로 좌회전을 하면 해발

6m 지점 해안가에 위치한 아담한 마을 인접이다. 한때는 바닷가 갯벌을 끼고 80여 가구가 살았다는데 지금은 25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소박한 마을로 변해 있다. 호암(虎岩)마을은 임진왜란 등 논란으로 인하여 피란터를 찾던 경주최씨(최치원 선생의 37대 최주), 여산송씨, 남양홍씨 등 3성씨가 1640년경 변산반도 동남방에 위치한 이곳에 피란터라 하여 자리잡아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온다.


당시에는 조그마한 포구로 마을 북쪽에 능선이 있고 (아래 작품 참조) 주위로 변산반도처럼 삼면이 바다로 소쿠리(바구니)모양으로 접해 있었으나, 지금은 소규모 간척으로 이내 갯벌

이 사라져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또한 서북쪽에는 화강암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곳에 낮은 해변의 해수가 암반 위로 드나들었다는데 그 주변이 20m, 높이 1.5m 암반에 호랑이

발자국이 있다 하여 호암마을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한다. 예부터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내변산에서 내려온 호랑이가 수문암반 위에서 목욕을 하고 바위에서 몸을

말리고 놀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 후 마을에는 김씨, 이씨, 박씨 성을 가진 분들이 들어와 모여 살면서 마을의 세력이 확장되었다고 한다.


호암마을 입구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 우물이 약효가 뛰어나 약물이라 소문이 나고 그 우물물을 먹어 동네에 장사가 많이 난다고 소문이 돌다 인근 동네분들이 시기심으로 우물에 시체를 넣어 폐쇄시켰다고 한다. 그 후 1920년경 일본식민지 통치가 호암마을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삼면이 바다에 접했던 마을은 안강만, 건간망 등 여러 어선들이 즐비한 소규모 어촌으로 면모를 갖추었으나, 신북에서 호암마을을 연결하는 제방 900m ,면적 50정보의 간척공사로 바닥에 깔려있는 바위를 없애버려 마을의 상징이었던 호랑이 형태의

범바위는 없어졌다. 작품속의 풍경은 호암마을 입구에 서있는 당산나무 두 그루와 아담하게 서 있는 동네모정의 풍경이다. 멀리 아스라이 고창군 부안면이 보이는 전경이 아름답다. 눈 내린 1월 중순에 사브작사브작 산보하듯이 걸어 들어가 스케치한 작품이다. 모정 밑으로 모여 있는 호암마을의 풍경은 참 아름답고고요함이 한참 동안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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