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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65 변산마포 산기리 풍경 - –어염시초가 풍성하여 살기 좋은 터
  • 기사등록 2021-07-22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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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리의 여름 73x40cm 한지에 수묵담채 2017

금요일 오후 용수철 튀겨 나가듯 수업을 마치고 어김없이 자동차에 시동을 켜고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운전하며 피로를 푸는 데는 휴게소에서 구입한 아메리카노 커피 만한 친

구가 없는 듯하다.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운전하며 마시는 커피 맛은 일품이다.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차가우면 차가운대로 중간중간 마시는 커피향이 차안 가득하고 맛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나 애인이라고 한들 목적지까지 가면서 자꾸 만지작거리며 빨며 가면 싫다고 화를 낼 테지만 커피친구는 말없이 뜻을 받아주니 이만한 벗이 없는 듯하다. 사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도 커피처럼 빨대를 자꾸 빨면서 침 묻히고 그러면 짜증낼 텐데 테이크아웃한 커피는 별 잔소리 없이 응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어느덧 줄포IC를 지나니 저녁 석양이 지고 땅거미가 곰소염전 앞을 덮으며 짠내가 코끝을 자극하며 익숙한 풍경이 눈에 가득해진다. 늦은 시간까지 먹 작업을 하고 작업실 가까운 개암황토죽염 찜질방에서 피로를 풀고, 이른 아침에 변산면 산기길 38-5번지 집을 그리기 위해 마을로 스케치를 가려고 나서려는데 아침부터 흐리던 날씨가 왠지 불안하게 느껴져 온다. 이른 새벽부터 찜질방 밖에는 거센 비가 뿌렸나보다. 그래도 어느 장소 작품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안하고 못 견디는 지랄 같은 성격 때문에 내 몸이 피곤해도 화판을 메고 떠나는 신세다.


산기 마을은 부안읍에서 30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변산면사무소에서 남서쪽으로 3km 지점 해발 15m에 위차한 산간마을이다. 마을 뒷편에 옥녀봉(玉女峰) 있으며 옥녀봉 뫼뿌리

에 복치(伏雉)라는 송전(宋田)이 있고 마을 앞에 매봉(鷹峰)이바라보고 있다.

산기리의 겨울 53x43cm 한지에 수묵담채 2017

지금부터 600여 년 전 고려 우왕 때 한 선비가 이곳에서 살았다. 바닷물이 마을까지 들어오자 산에 있는 나무가 울창하니 어염시초(漁鹽柴草)가 풍성하여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때 선비집 뒷산에 수십 마리에 꿩들이 살고 있었다. 이 선비는 꿩을 보살펴주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이웃 마을에 사는 나무꾼이 우거진 숲 속에서 나무를 베어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부터 꿩이 한 마리씩 죽어가니 선비는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다라고 생각한 선비는 뒷산을 더듬어 올라가보니 숲에 나무를 베어 간 것을 발견하고 산신령이 노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근심이 되어 있다가 더 이상 나무를 베어가지 못하도록 하려고 이웃 마을 나무꾼을 찾아갔는데 나무꾼에집 마당에 들어선 순간 선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무꾼에 식구들이 마당에 다들 죽어 누워있어 폐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원인은 꿩이 살며 지내야 할 나무숲을 베어냈기 때문에 산신령에 노여움을 사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 뒤 나무숲이 없어지게 됨으로써 매봉에서 내려온 매가 꿩을 잡아먹어 그곳에 꿩이 멸종됐다고 한다. 그 때부터 그곳을 꿩이 숲속에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하여 복치(伏雉)라고 하고 나무를 가꾸어 숲을 이룬 복치를 중심으로 한 산(山) 기슭에 옹기종기 터를 잡아 마을을 이루었기 때문에 뫼(山)자와 터 기(其)자를붙여 “산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산기리 마을에 도착하여 화판을 펴고 작품을 하고 있으니까 옆집 강아지께서 요란을 떨며 짖어댄다. 약간은 흐린 날씨 덕에 햇빛은 다행히 피할 수 있어 작품하기에는 안성맞춤의 날

씨다. 손끝으로 톡 건드리면 황토물감이 왈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고추밭에 앉아 계속 작업을 진행하다 문득 하늘을 쳐다


보니 양떼구름 정처 없이 서해로 길을 떠난다는 듯 바쁘다. 비가 오지 않을 모양새인가보다.

바지랑대 위에서 한가로이 졸고 있던 고추잠자리 한 마리도 떠나고 나도 이젠 스케치를 접어야 한다. 오려고 하던 비도 안 오고 추억이 내려앉은 외가 같은 마을에서 어느 새 그리움의 색들로 덧칠을 하고 뒷정리를 마치고 차에 시동을 켠다. 오늘도 고향의 그림을 그릴 수 있어 행복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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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7-22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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