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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66 백산 응봉리 - –동진강 구릉 사이로 한눈에
  • 기사등록 2021-07-22 15: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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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군 백산면은 내가 태어나고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백산면은 동북으로 김제군과 접하고, 동남으로 정읍과 인접하면서 동진강과 고부천(古阜川)의 유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름진 평야지역으로 풍요롭고 살기 좋은

부유한 땅이다. 또한 백산은 높이가 47m 정도밖에 안 되는 야트막한 산으로 이름만 산이지 실제로는 언덕이나 다름없는 작은 구릉지이다. 경주의 왕릉 정도라고 봐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한 작은 산 뒤기슭으로 동진강 물줄기가 부딪혀 두 줄기로 갈라지고 정상에 서면 동진강과 만경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만큼 시야가 탁 트여 있다.


백산은 예전에는 고부읍에 속했으나 고부군이 동학혁명이 일어난 반역의 고을이라 하여 폐군되면서 1914년 일부지역인 백산(白山), 거마(巨麻), 덕림(德林)의 3개면이 부안군으로 편입된 것이다. 백산의 땅은 고부천과 동진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지역으로 동남부 지역은 약간의 야산과 구릉지역이 많다. 그래서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이 만석보(萬石洑)를 쌓아 농민들을 가렴주구로 착취한 곳도 바로 이곳 백산과 이평 지역 땅이요 그로 인하여 동학군이 들고 일어나 3월 기포를 선포하고 전주성에 입성한 곳도 바로 백산산성에서였으며, 일본 놈들이 가장 눈독을 드려 농지를 수탈했던 곳도 이곳 백산 땅이다.

고향 이야기(백산산) 90x29cm 한지에 수묵담채 2008 (이경옥 소장)

또한 1915년 ‘열지동맹(裂指同盟)’ 결성 이후 독립운동의 거두 김철수(金綴洙, 1893년 ~ 1986년) 선생이 태어난 곳도 백산면 거룡(巨龍)리이다. 그래서 큰 인물들이 이 터에서 많이 나왔다. 해방 이후에는 좌우 극한 대립에 회의를 느끼고 고향 백산에 내려와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남도 산수의대가 허백련 선생과의 우정과 한국말도 못하는 우장춘 박사를 한국에 영구귀국하게 만든 분도 지운 김철수라는 애국지 사였다. 1970년대 독립운동가로 추서된 김철수 선생은 평생을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위해 투쟁했고 해방 이후에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살았던 백산은 우리 땅 역사에 길이 남을 땅이다.


어느 가을날 대죽리(일명 대머리) 동편에 위치한 응봉마을 앞을 지나다 눈에 들어 온 풍경을 그려보았다. 쭉 뻗은 송림 사이로 보이는 작은 슬레이트집과 언덕 구릉이 석양에 빛나고 있었다. 이 응봉마을은 마을의 뒷산에 매봉(鷹峰)이 있어 응봉 또는 매봉이라 불렀는데 이는 마을 주변의 지형에 맞게 지은 마을 이름인 듯하다. 원래는 ‘어은동(魚隱洞)이라고 불리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구전으로 응봉리로 바뀌었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내게 다가와 동네 어르신께서 귀에 대고 말씀해주었다. 또한 응봉리 뒷산 매봉은 이웃 정읍의 천태산의 여맥 한 가닥이 북으로 뻗어 잠시 솟아오른 형국으로 백산면에서 백산(47m) 다음으로 높은 산(구릉)이라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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