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68 신흥삼거리 방앗간 - –서리 맞은 풋 고추가 어머니의 손길을…
  • 기사등록 2021-07-25 13:51:25
기사수정

신흥리 방앗간 70x43cm 한지에 수묵담채 2017


고향의 가을은 유난히 짧은 것 같다.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불타던 변산에도 이미 이파리를 떨군 나무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하지만 낮은 평야의 산들은 여전히 붉기만 하다. 울긋불

긋 가을색이 물든 야산에는 형형색색들로 가득하고 가을 추수를 끝낸 논에는 벼를 밴 자리에 녹색의 새싹이 움트고 있다.


늦가을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어 다시 고향길로 추석연휴 이후 한 달만에 나섰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접어들면서 들떠있던 마음도 가라앉히고 차분한 마음으로 커피를 벗 삼아 콧소리 흥얼거리며 운전대를 잡고 곰소작업실로 달렸다. 줄포IC에서 내리자 길가 가로수 노랑 은행나무 잎은 차량 바퀴 밑에 뒹굴고 붉은 낙엽은 길 가장자리에 소복이 쌓여 있고 차창 밖 멀리 은빛 억새는 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 모습으로 소담스럽게도 피어있다. 겉보다 속이 아름다운 축복의 땅 고향, 가을 하늘 아래 억새처럼 출렁이는 은빛 향기를 내 가슴에 품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찜질방에서 하루 저녘을 묶고 이른 일요일 아침(11월 5일) 개암 찜질방에서 나와 행안면 신흥삼거리 방앗간을 그리기 위해 화구를 챙겨 길을 나섰다. 아침 안개가 많아 앞이 보이지 않아 안개가 조금 걷힐 때까지 읍내에 가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신흥삼거리에 도착하여 화구를 펼쳤다. 아침 공기가 차가워 옷을 단단히 무장을 하고 그리기 시작했다.


허름한 신흥방앗간과 허물어진 슬레이트 지붕 위에 서리 맞은 풋고추가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다 못해 잠시 졸고 있는 듯하고 시들어가는 노란 돼지 감자꽃이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마당에서 멍석을 깔고 된장에 꾹 찍어 먹던 그 고추다.


잠시 따뜻한 헛개차로 추웠던 몸을 녹이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작품 속 풍경에 등장하는 슈퍼마켓 주인이 오셔서 말을 건넨다.

“어디서 오셨어요?”

“네, 서울에서요.”

“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라고 말을 시작하시더니 구구절절 동네얘기를 꺼내놓는다.

서울에서 식당을 하다가 2년 전에 귀농했다는 아저씨(우영덕)는 웬 하얀 머리 할아버지가 길가에 앉아 있기에 다가왔다 한다. 나는 혼자말로 “염색을 해야 하나” 중얼거렸다. 작품하

는 동안 내내 신흥리 마을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를 자세히 말해주었다.


복된 동네 정 있는 마을 신흥리(新興里)는 주산면과 경계에 있는 신흥리 예동의 원래 마을 이름은 여우실이라 한다. 이를 연음화하여 여술이라 불렀는데, 옛날 어릴 적 우리 동네에도 여술떡(댁)이 있었는데 신흥리가 여술이라 하니 옛 생각도 떠오르니 감회가 새롭다. 한자명으로는 ‘호곡(狐谷)’이라 하며 안여술과 밧여술(밖여술)이 나뉘는데 1914년 이전까지는 고

부군(古阜郡)의 덕림면(德林面)에 속한 마을이었는데 고부군이 폐군되면서 덕림면이 부안군에 편입되면서 부안읍과 주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신흥리는 조선시대에는 주산면애 속해 있

다가 부자가 많고 지역 세도가(의성김씨 집성촌)들이 많이 살고 있어 그 자긍심 때문에 일제 때 부안읍으로 편입되었다.


귀농하신 우선생 말씀으로는 이곳 신흥삼거리가 옛날에는 사거리였는데 다방도 있었고 간이 파출소(지서)도 있었다고 하니 인구를 짐작케 한다. 어릴 적 명절 때면 꼭 거쳐 산소 가는 길에 위치한 부안 신흥삼거리 방앗간은 부안 아담사 거리에서 주산, 줄포방향으로 6km 정도 가다 보면 주산 덕림리로 갈라지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삼거리에 위치한 방앗간 이다. 지금은 방앗간의 영업이 멈춘 듯 폐허가 되어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장소이다. 보기 흉해서 곧 헐린다는 소식에 그대로 보존하며 방앗간 커피숍이나 갤러리는 어떨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본다.


그림 그리는 동안 텃밭의 탐스러운 배추가 흔들린다. 추웠던 몸도 저 멀리 붉은 들녘에 아침 둥근 해가 기지개를 켜고 나오니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바쁜 걸

음으로 밭으로 나간다. 나도 다시 곰소작업실로 향한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1-07-25 13:51:25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칼럼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