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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76 고향 설송(풍랑마을) - –사뿐히 내리는 눈을 모두 품어버린 소나무
  • 기사등록 2021-08-04 16: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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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설송 1 94x210cm 한지에 수묵담채 2014


상서면은 부안의 서쪽 위에 있다는 뜻으로 붙여진 행정 지명으로 한 번도 지명의 이름이 변한 적이 없이 지금까지 이어온 이름이다. 다만 1914년 일제가 군, 면을 통폐합할 때 하서면의 남성, 남수, 청림의 일부와 남하면(현 주산면 서북지역)의 청계, 사산, 구산의 일부를 합하여 다소 넓어진 면이다.


작품 속의 풍랑마을은 통정리 남쪽 우슬재 못 미친 지점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원래 ‘풍년 풍(豊)’자 ‘구슬 랑(琅)’자를 썼다고 한다. 고려 말엽 최씨 집성촌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

으며 현재는 남궁씨, 이씨, 김씨, 강씨, 양씨, 유씨 등이 살고 있다. 풍랑마을은 상서면과 하서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데 행정구역상 상서면에 속한다. 마을이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 처음엔 소나무를 보고서 찾아간 마을인데, 여행객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마을이다. 돌담과 낮은 현대 한옥이 서너 채만 보일 뿐인데, 이곳에 마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란다.


숨어 있다시피 한 풍랑마을을 이끄는 것은 잘 생긴 노송들 이다. 주변을 두르고 있는 솔숲이 한 방향으로 늘어뜨린 노송들이 마중을 한다. 소나무숲을 지나면 마을 회관이 나오고 자그마한 정자 옆으로 잘 생긴 노송 몇 그루가 있다. 또한 수백 년은 족히 됐을 느티나무인데,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한다. 


풍랑마을은 주위가 산들로 병풍처럼 둘러있어 마치 움푹 파인 종지그릇 속에 앉아있는 모양새이다. 마을 안은 돌담이 아름답고 담장은 높지 않아 보통 키의 어른 허리춤 높이로 집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훤히 보인다. 아마도 서로 감추거나 숨길 게 없어 아마도 담장이 높을 이유가 없는 듯하다.

풍랑 설송 2 74x38cm 한지에 수묵 2016

특히 눈 내리면 더욱 아름다운 풍항마을의 내리는 눈은 대부분 서해안 습기를 잔뜩 머금은 습기 있는 눈으로 일명 ‘떡눈’이라고 하는데, 서로 잘 뭉쳐 눈싸움이나 눈사람 만들기 좋은 눈이라 할 수 있다. 소나무 가지에 앉은 눈 또한 웬만해선 잘 떨어지지 않고 수북이 쌓인다. 푸른 소나무위에 쌓인, 댓잎에 위태롭게 대롱대롱 달려있는 눈, 돌담 위에 지붕처럼 얹혀 있는 눈, 텃밭에 세워 놓은 경운기를 덮은 하얀 눈이 쌓인 농촌의 겨울풍경들이 아름답다.


풍랑마을에는 지금까지 전해오는 설화가 있다. 마을 동쪽으로 공판(공놀이를 하면서 목욕도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공판 위로 지네바위가 있고 지네바위 밑에 지네굴(사람이 엎드려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굴)이 있는데, 지네굴 속에는 수없이 많은 지네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더운 여름 날 최씨의 아내가 질마재를 넘어 올챙이 방죽(현재 도화마을) 위에서 밭을 일구고 있는 남편한테 점심을 내어 가고 있었다. 날이 몹시 더워 공판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어오더니 집채만한 지네가 농부의 아내 곁으로 접근하여 너무도 놀라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남편의 점심을 지네에게 던지니 지네가 동굴로 들어갔다 한다. 농부의 아내는 단숨에 달려가 남편에게 자초지종 얘기를 했더니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버럭 화를 내면서 그 지네를 잡아 죽이겠다며 지네굴로 들어갔다. 


굴 속에 들어간 남편은 아무리 찾아봐도 지네는 온데간데없어 좀 더 들어가 보니 굴의 끝부분에 수직으로 굴이 나 있으며, 그 굴 밑바닥에는 물이 괴어 자세히 살펴보니 부인이 던진 밥그릇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어서 농부가 돌을 던졌더니만 물소리는 나지 않고 바람소리만 났다 한다.


어찌 할 수 없어 밖으로 나온 농부는 화가 가라앉지 않아 지네를 잡기 위해 굴 속에 불을 사흘 밤낮을 피웠는데도 아무런 기척을 들을 수 없었다 한다. 결국 지네 잡기를 포기한 최씨

는 다시 올챙이 방죽 위 밭으로 일하러 가는데 이상하게도 올챙이 방죽에 물이 솟는 곳에서 물과 함께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나는 것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최씨는 지난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이는 분명히 지네굴과 올챙이 방죽이 이어져 있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굴 속에서 바람소리가 나고 그 굴과 연결된 올챙이 방죽에서는 샘물이 솟아 물결을 이루고 있으며 밥그릇 뚜껑은 물위에 둥둥 떠 있었다고 한다. 여기까지 생각한 최씨는 마을 이름을 풍랑동이라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사흘 낮밤 동안 지네굴에 불을 지피우면 올챙이 방죽에서 연기가 난다고 전해오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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