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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기획 연재 - 02 이상범(1897-1972), 무릉도원
  • 기사등록 2021-08-18 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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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1897-1972), 무릉도원, 1922, 비단에 채색; 10폭 병풍, 이미지: 159x39x(2), 159x41x(8)cm, 병풍: 202x413cm. 

‹무릉도원›은 화면 상단에 직접 쓴 이상범의 관지(款識)에 의하면 1922년 벽정(碧庭)이라는 인물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1923년 11월 4일자 『매일신보』는 노수현과 이상범 2인전의 성공을 전하며 또 다른 이상범의 ‹무릉도원›을 사진으로 수록하였다. 기사에 의하면 사진 속 작품은 1년 전 모씨의 요청을 받고 반년 이상의 제작기간이 걸린 연작이며, 전시된 작품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는 내용이다. 두 작품을 비교하면 구도는 물론 경물 배치까지 거의 유사하다. 


 또한 병풍의 제1폭 뒷면에 적혀 있는 “청전무릉도원(靑田武陵桃源)”이라는 표제(標題)는 동양의 이상향을 대표하는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그린 시의도(詩意圖)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화면 상단에는 당나라 문인 왕유(王維)가 도연명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도원행(桃源行)」이 적혀 있다. 안중식은 조선시대의 전통을 계승하여 1910년대에 「낙지론(樂志論)」, 「도화원기」, 「귀거래사(歸去來辭)」, 「추성부(秋聲賦)」 등의 문학작품을 산수형식으로 그린 시의도를 다수 제작하였다. 특히 배를 탄 어부가 화면의 오른쪽 하단에서 동굴을 향하고 대각선 방향의 왼쪽으로 진인동(秦人洞)이 펼쳐지는 도상은, 안중식의 ‹도원문진(桃源問津)›(1913)이나 ‹도원행주(桃源行舟)›(1915)에서 직접 차용한 것이다. 표현기법은 근대적 감각을 반영하지 않은 안중식의 초기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풍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창덕궁 경훈각의 동쪽 벽에 걸린 ‹삼선관파도(三仙觀波圖)›(1920)와 동일하다. 


 비록 주제나 표현기법 등에서 전통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화면 왼쪽에 대각선으로 펼쳐진 진인동 장면에만 일점투시도법을 적용하여 사실적인 공간감을 나타낸 것은 근대적 시점의 수용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처럼 전통 산수화에 근대적 시점을 일부 적용해 변화를 시도하는 창작 태도는 안중식의 ‹영광풍경›(1915)과 비견할 만하다. 이밖에 화면 상단 끝부분에 보이는 “서향화수(書香畵壽)”는 석산(石山)이 1945년 이 작품을 실견한 다음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예가 겸 전각가인 성재 김태석(惺齋 金台錫, 1874-1953)이 1950년 이상범의 ‹무릉도원›을 보고 적은 배관기(拜觀記)이다. 이에 따르면 안중식의 제자 관재 이도영(貫齋 李道榮, 1884-1933)이 표제를 적었으며, 이도영과 이상범의 합작(合作)은 드문 경우라고 하였다. 어쨌든 이 작품은 이상범이 관전(官展) 스타로 부상하기 이전인 1920년대 초반 안중식의 산수화풍을 그대로 이은 수제자였음을 입증해준다는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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