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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첫 당선인으로서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지병 악화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직후 집권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 대선 후보로서 ‘6·29 선언’을 발표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였다. 이어 같은 해 12월 13대 대선에서 당선되면서 직선제 도입 후 첫 대통령이 됐다.

1932년 12월 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현 대구 동구 신용동)에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수도사단 맹호부대 대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후 1979년 육군 9사단장, 수도경비사령관을 거쳐 1980년 국군보안사령관에 취임해 제5공화국 출범 후 정무 제2장관에 임명됐다.

노 전 대통령은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인 ‘하나회’의 핵심으로서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이후 신군부 2인자로 등극한 노 전 대통령은 1982년 초대 체육부 장관, 같은 해 4월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1985년에는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군인 이미지를 탈색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1987년 6월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당시 민주화 항쟁의 성과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지면서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커졌으나, 야권 후보들의 분열에 따른 ‘1노(盧)3김(金)’ 구도의 반사 이익을 본 노 전 대통령은 결국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통사람’을 슬로건으로 내건 노 전 대통령은 당선 이후 민주주의 정착과 외교적 지위 향상, 토지공개념 도입 등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기소됐으며,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형을 확정 받았다.

이후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이 있다. 소영씨와 이혼 소송 중인 인물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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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26 16: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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