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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 들고 영월을 품다 - 김상철(동덕여자대학교 교수, 미술평론가)
  • 기사등록 2022-11-22 23: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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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산 홍성모는 실경산수화로 평생을 일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는 늘 빼어난 풍광과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발품을 파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연례적인 중국 탐승과 사생 기행은 물론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누비며 대자연의 기운과 아름다움을 화면에 담아 왔다. 그의 이러한 노력과 성취는 그를 오늘날 실경상수화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오산의 작업은 대상이 되는 자연에 몰입하는 진지한 표현은 물론 역사와 지리, 인문에 귀 기울이는 성실함은 단연 두드러진다. 눈으로 확인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작가의 해석을 통해 비로소 더해지는 인문적 이야기들은 땅의 역사에 사람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읽는 재미가 있다.

몇 해 전 오산은 전북 부안지역을 58m에 이르는 대작으로 담아낸 바 있다. 장쾌한 화면에 담긴 부안의 풍경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절절한 애정이 담긴 헌사에 다름 아니었다. 이제 그는 다시 열정을 모아 강원도 영월을 마주하였다.


영월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곳일 뿐 아니라 단종애사와 관련된 역사적 의미, 그리고 박물관으로 특화된 문화도시의 고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거처를 영월로 옮겨 직접 현장을 답사하고 이야기를 채집하며 자신을 영월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만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현장을 답사하며 사생을 하며 준비하였다 한다. 길이 끊기면 래프팅을 하고 드론을 날려 하늘에서 그 유장한 자연을 살피고 다리품을 팔아 절절한 사연들을 채집하고 그 이야기들을 화면에 담아내었다. 이렇게 해서 65m에 달하는 영월 대작을 완성해 가고 있다. 이는 영월읍 앞에서 시작된 동강은 평창을 거쳐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까지 이르는 공간이 65km이기에, 이를 100분의 1로 축소하여 65m의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사실 대작의 의미는 그저 화면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다. 커다란 공간을 한 화면 안에 넣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는 전적으로 작가의 공간 경영에 의해 이뤄지는 오묘한 것이다. 다양한 공간의 조화는 물론 계절의 변화마저 한 화면에 담기 위해서는 시점의 변화와 과감한 함축과 생략 등 작가의 역량이 총동원되어야 한다. 이번 작품에서 드러나는 공간과 공간의 유기적인 관계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어지럽지 않게 풀어내는 것은 진정 작가의 끊임없는 고뇌와 번민의 결과임이 자명하다. 적잖은 실경 산수화가들 가운데 오산과 같은 대형 화면을 접해 보거나 경영해 본 이들이 극히 희소함은 이번 작업의 노고에 대한 격려와 더불어 높게 평가되어야 할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작가는 가수리와 청령포와 어라연, 선돌 등 영월 10경은 물론 영월의 현대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를 화면에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영월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백 나한상을 품음으로써 이번 전시를 완성하였다. 거친 듯 질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양이지만 그것은 이 땅의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한상의 안온한 미소는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전해주는 잔잔한 위로이자 안식이 될 것이며 작가에게는 또 다른 실험과 가능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구성된 작가의 이번 전시는 단순한 영월의 자연을 전하는 서정의 화면이 아니라 역사와 인문, 자연과 생태를 아우르는 대 서사의 장쾌한 화면을 이뤄내고 있다.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40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영월을 마음속에 품어 왔다. 비록 그의 작업이 적잖은 준비 기간을 거쳤다고 하지만, 그 시작은 이미 40여 년 전에 시작된 셈이다. 영월에 대한 한 작가의 애정과 이를 발견하고 인정해 준 영월군의 혜안이 오늘의 장면을 이뤄낸 것이다. 이는 단순히 한 작가의 성취라는 의미를 넘어 문화와 행정이 어우러져 이뤄낼 수 있는 새로운 협업의 가능성이라 여겨진다. 문화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보다 인간적인 삶의 질을 담보하는 것이라 할 때, 또 영월이 자연과 문화를 표방하는 살기 좋은 고장이며 문화가 새로운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적어도 영월은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을 확보한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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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11-22 23: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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