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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백년대계의 초석 부산 기장 용화사 e - 이 시대 진정한 도인 청담스님에게 길을 묻다.v
  • 기사등록 2014-07-16 03: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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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 건 올린 기분이 아닐 수 없다.
산사를 찾아 순례 10여 년에 적어도 하루 한번은 사찰의 대웅전을 기웃거렸던 필자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 친견의 기회가 없어 담소를 학수고대하던 필자에게 스님이 보살을 통해 친견을 허락했다. 우월감이 일어 내친김에 작심했고 이내 발길을 무작정 부산으로 향했다.

허례허식과 격식이 없는 이 시대 진정한 도인 청담스님
용화사 토굴...수십 년 수행정진 끝에 득도 생불(生佛)로 추앙 받아

깊은 산 속 산사의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범부의 생각과는 달리 세속의 향기가 그곳에는 없었다. 휘황찬란한 바깥세상의 풍경이 부산과 기장군사이의 경계를 두고 단절되어 있는 듯 했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법당은 그러나 주변의 수려한 경관을 아우르는 듯, 생불로 추앙을 받는 도인의 도량답게 묘한 불법(佛法)을 느끼게 했다.

“오시느라 수고했어요.”
“찾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잘 찾아 오셨네요.”

필자와 스님의 연결을 맡았던 울산의 보살과 처사가 미소로 반갑게 맞이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불심이 가득한 보살은 처음에는 다소 낯선 내방객의 방문에 어리둥절 하는 듯 했지만, 이내 분위기가 무르익고, 좌정을 하며 스님께 불자의 예를 다하고자 삼배를 청했다.

그러나 스님은 한사코 만류했다. 자신은 결코 삼배를 청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고 당혹감까지 일었다. 불자의 예로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이거늘 스님은 한사코 삼배를 거부했다. 세속의 향기를 등지고 있는 이 시대 진정한 도인으로 가히 생불(生佛)의 화현을 보는 듯 했다.
스님이 이러하니 스님을 따르는 신도 모두가 그럴 수밖에...순간 가슴에 용솟음이 일었다. 감동이었고 수백리길을 달려온 환희의 보람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이내 스님의 티 없이 맑은 심성이 범부의 뇌리에 잡혔다. 30년 넘게 바깥세상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스님의 모습에서 한국불교 백년대계의 진정한 초석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행복해야 합니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화합으로 상생하고 자비와 관용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해야지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반야의 지혜를 모아 화해와 협력으로 정치는 제 자리를 찾고 경제는 활성화되어 모든 국민이 희망을 가지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면 합니다.”

스님은 신라시대 원효대사는 화쟁사상(和諍思想)으로 중생을 제도했고, 고려시대에는 태고국사가 원융사상(圓融思想)으로 중생을 제도했다며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화합으로 단결하여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진도 여객선 침몰로 인한 최근의 우리사회에 대한 안타가운 이면을 표현하는 듯, 국태민안에 대한 염려와 기대성 격려였다.

한편 법당 내부는 도인의 도량답게 범부가 보기에도 그 기운이 매우 심오하고 신묘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헐 그러진 토굴에서 스님은 숱한 세월 기도와 수행정진으로 성불을 거듭했고, 급기야 살아 생불로 신도들로부터 추앙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스님은 깊은 산 속 허름한 암자에서 이십여 년 이상을 오직 수행으로 일관했고, 마침내 극락의 도솔천을 내왕하며 성불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 무엇이 스님을 성자의 반열에 오르게 한 것인지, 그러나 그 답을 알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님은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은 도인입니다. 스님의 기도와 축원으로 환자가 치유되고 소원성취의 성불을 본 사례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스님을 곁에서 시봉하고 있는 울산처사의 귀 띰이었다. 처사에 의하면 용화사 신도들 대부분이 스님의 원력을 통해 성불을 경험했다고 한다. 또한 그 성불의 경지가 자아를 찾아 참 나를 발견하는 회광반조(廻光返照)의 화두까지도 체험했다는 불자들이 다수라고 전했다.

동석했던 울산보살의 귀 띰은 그 증명을 더했다. 용화사 청담스님을 친견 한 이후, 사업의 원만 성취는 물론 병고에 시달렸던 신도들이 스님의 축원과 원력기도로 부처님의 가피를 몸소 체험했다고 전한다. 이렇듯 청담스님에 대한 용화사 신도들의 증언은 가히 한국불교의 희망을 일궈내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사상까지도 엿 볼 수 있게 한다.

득도 후 스님의 이마에는 미륵불의 화현 나타 나...
2013년 4월 부처님 좌정 가슴에 비로자나불 성불 득도

문득 불이(不二)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법과 수행은 불이의 관계로 다민족 다종교 사회에서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종교가 바로 불교이고 보면 스님의 성불과정은 수행정진의 결정체로 스님은 오탁악세의 혼탁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성불의 실증적 사레로 평가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스님은 거동이 불편하다. 평생 외길 수행과 기도정진으로 몸에 이상이 생겨 신장을 이식받기에 이르렀고 현재는 다소 건강을 되찾고 있지만, 스님은 아랑곳없이 예나 지금이나 기도와 수행에 초심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불교는 이제껏 받기만 했지 주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은 소유가 아닌 나눔을 통해 모두가 함께 행복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스님은 그 동안 불사에 여념이 없다보니 보살행을 실천하는데 다소 미약한 부분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인지 용화사의 사찰 운영은 수입과 지출을 신도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도들 또한 사욕과 삿된 마음이 있을 리 없다. 새삼 한국불교의 새로운 변화와 개혁의 징표가 바로 이곳 용화사에서 전진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한편 스님은 사찰의 재정이 허락하는 한 소외계층과 지역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도 앞으로는 적극적인 관심과 실천으로 종교의 사회적 책무에도 최선을 다 할 생각이라고 했다.

삶의 풍요로움은 인연을 선택하는 행위만큼이나 인연을 잘 다듬어 내는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스님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평생 외길 세월의 고락을 불법(佛法)의 제자로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수행자의 원칙과 불가(佛家)의 도리에 충실했던 것이다.

예의 그 맑고 청순한 표정으로 담소를 마무리하며 스님은 필자에게 간단한 법문을 하사했다. 스님의 구김살 없는 법문은 불법(佛法)의 향기로 가득했다.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청정 비구의 법문을 가슴에 새기며, 잠시 스님의 수행과정을 되새겨 보았다.

지난 1995년 8월, 스님은 현몽에 의해 바로 이곳 백운산 자락에 용화사를 창건했고, 수행과 기도정진을 통해 자운반니 여래불 수기에 들었고, 이듬해 8월 불가의 4성문인 수다원과 아라한을 증득하여 3계(욕계. 색계. 무색계)를 통과하고, 이내 삼략삼보리 이고등락에 들었다고 한다.

또한 스님은 지난 2013년 3월과 4월에 금강계단에서 금강을 얻고 이마에 미륵불의 화현이 나타나기에 이르렀으며, 가슴에는 법신이자 비로자나불의 화현이 중생구제의 사명으로 되새겨 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2014년 지금 현재, 스님의 수행납자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스님께서 성불을 하던 날 스님이 부처님 세계에 갔더니 부처님은 스님에게 이 가시덩굴을 전할 사람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며 스님에게 해빙기 북극의 얼음이 떠내려가듯 히말라야 산맥의 크기와도 같은 칠보 각각의 보석들을 수도 없이 자신을 향해 떠내려 보냈다고 회고한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 했던가!
진흙에서도 유유히 피어나는 한 송이 연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인고의 세월을 참고 견디어 냈을 스님과 그를 시봉하는 용화사 신도 모두에 대한 경의가 새삼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촬영이 있었던 그 날 그 자리에 동석했던 신도 모두에게 축원의 건승을 기원하며 한국불교의 새로운 희망을 기대해 본다.

취재. 하태곤 기자(tkha715@dailywoman.co.kr)




한국불교가 새롭게 변하고 있다. 1700년 한국불교의 상징은 이른 바 추상과도 같은 수행가풍으로 참선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정해진 틀을 고집해 왔다. 사찰의 대웅전 하면 깊은 산속을 연상케 하고 물과 바람소리로 산사의 고요함에 적막함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한국불교의 고전적 틀이었고 전통적 우리불교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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