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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39 월명암의 겨울과 봄 - –풍경소리 맑게 내변산을 울린다
  • 기사등록 2021-06-24 10:59:26
  • 기사수정 2021-06-24 23: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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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암의 봄 27*21cm gkswldp tnanrekaco 2017

기해년 새해를 맞아 주말 이른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다. 해무와 미세먼지가 뒤엉켜 시계가 좋지 않아 바로 쌍선봉에 오르지 않고 1시간 반만에 월명암에 도착하였다. 대웅전 사이 구상나무 두 그루가 반겼고 삽살개가 꼬리 흔들어 댄다. 안개 속의 내변산의 연봉들은 보이지 않아 스케치를 할 수 없어 월명암 뒷산 낙조대에 올랐다.

예약하고 올라간 공양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낙조대를 스케치를 하고 내려와 점심 공양을 했다. 스님 공양 시간을 끝낸 이후에 공양을 시작했는데 너무 정갈하고 맛있게 준비해주신 공양주 보살님의 정성에 너무 감사했다. 산중이라 부식을 가져 나르기에 한계가 있을 터이고 겨울이라 이곳 텃밭에서 키운 야채가 여유롭지 않았을텐데 푸짐한 음식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요사체 마루에 방문객을 위해 항상 준비해 놓은 따뜻한 마가목차를 마신 후 조금씩 희미하게 드러나는 산을 바라보며 오랜만의 힐링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월명암은 산속에 있다. 속세를 떠나 수행하는 절은 도회 가까이 있는 절보다 산이 깊을수록 수행의 깊이는 더 깊듯 한 시간 이상 가파른 깔딱고개의 산을 타고 와서 그림을 그리면 필자 또한 수행이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월명암에 서 있다. 이렇게 힘들게 올라와 풍경을 봐야하니 작품 속에 욕심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 그렇게 해서 멋진 작품을 만나면 마음의 스트레스가 풀릴 것이다.

월명암의 겨울2 34*34cm 한지에 수묵담채 2018

내변산의 수많은 봉우리 중에 두 번째로 높은 쌍선봉 자락의 월명암은 차를 두고 한 시간 이상 땀을 흘러야 다다를 수 있는 청정 기도도량이다. 월명암의 사계는 너무 아름답다. 변산팔경 중 두 가지가 월명암과 연관이있다. 아침 월명암에서 바라보는 내변산 계곡의 잔잔한 안개가 제4경 월명무애(月明霧靄)이고, 바로 뒤 낙조대 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일몰이 제5경 서해낙조(西海落照)가 바로 이것이다.


대대로 월명암에 전해오는 부설전(浮雪傳)이라는 책이 있다.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된 귀한 책이다. 몇 번의 화재 속에서도 지금까지 전해온 것 자체가 신기하기까지 하다. 빛바랜 한지에 정갈한 붓으로 쓴 부설전을 직접 보지는 못 했지만, 그 자체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월명암은 서기 691년 부설거사가 창건했다. 부설은 인도의 유아거사, 중국의 방거거사와 함께 세계 불교 3대 거사 중에 한 분이다. 월명암은 이렇듯 스님이 아닌 법력이 높은 거사가 창건한 보기 드문 절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소실됐다가 진묵대사가 중건을 하였고, 1847년 성암선사가 중창하여 이어오다가 여순반란의 영향으로 소실됐다가 지금의 월명암은 과거 묘적암 터로 추정한다. 아늑하고 안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며 바로 뒤 능선 위로 낙조대와 쌍선봉이 있다. 월명과 낙조는 잘 어울리는 분위기이다. 낙조대에 올라서는 순간 서해가 저 앞에 펼쳐지며 낙조를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로 여겨진다. 변산팔경 중의 5경이 월명낙조인 것이다.

이매창과 유희경은 변산반도를 유람하며 많은 시를 썼고, 그걸 모아 개암사에서 시집으로 편찬했다. 그때도 월명암에 오르는 길은 험난했던 모양이다. 이매창의 <등월명암(登月明庵)>이라는 시를 소개한다.


하늘에 기대어 절간을 지었기에(築蘭若倚半空)

풍경소리 맑게 울려 하늘을 꿰뚫었네.(一聲淸磬徹蒼穹)

나그네 마음도 도솔천에나 올라온 듯(客心怳若登兜率)

황정경을 읽고 나서 적송자를 뵈오리다.(讀罷黃庭禮赤松)

이매창의 시에 젖어 있는데 벌써 해가 낙조대로 기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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