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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42 곰소의 겨울 - –햇빛과 바람이 소금을 만든다
  • 기사등록 2021-06-28 15: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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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의 겨울 39*90cm  한지에 수묵담채 2019

지금까지 곰소인으로 살아 온 모든 기준이 물대에 맞추어 살아온 삶, 이것이 갯곰소사람들의 삶이라 할 수 있다. 곰소 사람들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매일 한 시간씩 늦어지는

물때에 맞춰 바다가 정해주는 시간과 날씨에 살아온 것이다. 과거 곰소라는 지명은 소금을 ‘곰소’라고 부르는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곰소 일대 해안의 풍경 형태가 소(沼)가 존재한다고 해서 유래됐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는 곰과 같다 하여 생긴 섬(곰섬)과 그 앞에 소가 있어서 유래된 ‘검포진’의 ‘검포’는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위치한 곰소염전은 줄포IC에서 내려 30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영전사거리에서 9시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연당삼거리를 지나면 대형지게 옆에 곰소염전이라는 푯말이 있다. 부안 마실길 제 7코스 곰소 소금밭길이다.


곰소염전은 서쪽 내소사 위 관음봉 예사롭지 않게 산세를 보여주고 염전 뒤 매봉과 좌측의 천마산의 기운을 받는 위치에 앉아 있다. 곰소염전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천일염으로서 바다와 근접한 여타의 염전과는 달리 곰소만 안쪽에 위치해 있으며 그 넓이는 3만평에 이른다. 곰소염전의 소금밭을 일군 지 77년이 되었다는 곰소염전은 일제강점기에 연동마을에서 호도(범섬)와 웅연도, 작도를 연결하는 제방을 쌓으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천일염은 처음 일본에 들어와 나중에는 줄포항에서 곰소염전에 생산되는 많은 양의 천일염을 일본으로 수탈되었다. 곰소염전은 광복 이후 1946년 6월 창립자 신동근 씨가 중심이 되어 호남 인근 주주들로 구성된 순수한 우리 자본으로 건립된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렀고 지금은 신종만 대표님께서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5년 전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할 때 아드님과 전시회 관람도 하러 오셨고 한 달 전 사모님과 아드님을 모시고 직접 곰소작 업실에 들려 점심까지 사주시고 좋은 말씀까지 해주신 따뜻한 분이다. 지금은 그 아드님이 대를 잇고 있다는 곰소염전의 앞날은 그래서 밝은 것이다.

현재 곰소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으로 전국적으로 젓갈로 명성을 떨치는 이유에는 무기질이 풍부한 질 좋은 소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과거에는 소금을 ‘백금’이라고 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져 임금님 피난길에도 꼭 챙겨가는 것 중에 하나였다. 요즘 들어 발효식품이 필요한 시기에 질 좋은 소금이 있었기에 곰소 젓갈, 상서 된장, 개암 죽염과 같은 부안의 질좋은 발효식품이 우리 부안에서 생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질 좋은 전국 최고의 곰소 천일염의 생산 시기는 3월~5월 말까지는 15일 정도면 생산되는데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 날씨에는 매일 소금을 생산할 수 있으며 봄, 가을에는 3~5일마다 채취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5월에는 청정지역 국립공원 내변산에서 곰소 쪽으로 날아오는 송홧가루가 자연스럽게 소금에 내려앉아 만들어지는 송홧가루 소금이야말로 곰소 소금 중 단연 최고라고 한다. 송홧가루 소금은 동의보감에서 그 효능이 소개되어 있고,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리던 재료였고 피난길에도 꼭 챙겨가는 것이었다. 당시에 만들어진 소금창고가 현재도 남아있어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서 의미를 지닌다. 

다만, 곰소염전의 전반적인 자료, 건물, 유무형 유산에 대한 보존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이라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현재까지도 소금을 이길 수 있는 재료는 오직 나무밖에 없다고 한다. 많이 낡았던 소금밭 창고들은 근래 지원을 받아 많은 부분이 보수되었다.


땅 위에 하늘이 밝게 펼쳐져 있다. 풍경 위에 풍경이 겹쳐진다. 하얗고 푸른 소금밭, 여전히 스스로의 몰입 속에 안녕하다. 조금은 변했다. 검게 쓰러져 가던 소금창고는 일부 새로워졌다. 밭 바닥에는 반듯한 타일이 깔렸고 밭둑은 새 나무판으로 탄탄하게 세웠으며 수레를 쉽게 밀 수 있는 컨베이어벨트도 있고 생채기 없는 플라스틱 수레도 생겼다. 간수를 보관하는 해주 지붕도 새 것이 많이 보인다.


곰소염전의 역사는 77년쯤 되었다. 천일염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1942년 원래 섬이었던 곳에 제방을 쌓아 도로와 항구를 만들자 자연스레 염전이 형성되었다. 원래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소금이 유명했다. 당시에는 바닷물을 끓여 만든 화염이었다. 염밭을 일구면서 이곳의 소금은 특별해졌다. 바닷물에는 미네랄이 많이 함유되어 있었고 5월이면 내소사의 소나무에서 바람을 타고 온 송홧가루가 염전에 쌓였다. 지금은 귀한 황토 소금도 생산한다. 지금도 곰소염전의 소금은 유명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곰소 염전은 지리적으로 만에 위치해 미네랄 함량이 높아 지리적 위치에서 유리하며, 고품질의 천일염이 생산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3, 4월에서 10월 사이가 소금을 거두는 적기이며 특히 5,6월이 가장 좋다고 한다. 곰소 소금은 짜지 않고 달다. 그 이유는 가장 맛있는 염도는 25~29%의 염도를 가진 소금이라 항상 비중계를 가지고 다니면서 염도를 체크한다. 바닷물이 염전에 들어와 흰 소금꽃인 천일염을 만들기 위해서는 20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6단의 1증발과 4단의 2증발을 갯벌로 이루어진 염판을 거치면서 좋은 미생물과 만나고 천연살균과 정화가 이루어지고, 4단의 결정지에서 3~5일이 지나면 소금 결정이 생긴다.


4년 동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곰소작업실에 있다가 작업을 마치고 돌아서면서 곰소염전을 바라보았다.

자연이 주는 선물! 소금이 자라는 곳! 왠지 소금은 바닷물이 아니라 농산물처럼 자라는 부산물처럼 느껴졌다. 소금이 생산되는 염전의 아름다운 석양 모습의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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