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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한국불교의 희망... 적멸보궁 대전 보현사 - 신비의 영가천도 기도영험도량 보현사의 보리수나무 와 비구니 보현스님의 평생 외길 지족(知足)의 삶a
  • 기사등록 2014-07-16 03: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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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스님의 마음이 동(動)할까 서둘러 발길을 대전으로 향했다.
한 차례 소나기가 창공을 정화시킨 주말 오후, 하늘은 태풍 전만큼이나 고요하고 쾌청했다.

보현스님...40 여년 외길 수행과 포교로 지족(知足)의 삶 실천.
적멸보궁 보현사...한국 제일의 영가천도 기도영험도량으로 유명

산등성이 아래 장엄한 대청호의 장관이 마치 적멸보궁 보현사의 위대한 여정을 환희로 일깨우듯, 보현사를 두르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은 가히 놀라움 그 자체였다. 부초처럼 점점이 떠 있는 한 폭의 수려한 경관은 불가의 보현보살을 연상케 했고, 평생 외길 지족의 삶으로 불법(佛法)을 펼치고 있는 도량의 주지 비구니 보현스님이 바로 그 불보살의 화현으로 대를 잇는 듯했다.

세속의 향기를 벗 삼아 산을 노래하고 산을 품었던 도량의 주지 보현스님. 출가 이후 40 여년 외길 지족(知足)의 삶을 실천하며 수행과 포교를 통해 지역 사회에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었다.

“나 같은 시골 비구니가 인터뷰는 무슨...”
“우리 그냥 편하게 차나 한 잔 합시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육중한 필자의 손을 잡아끄는 스님의 표정이 마치 산사의 동자승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예의 그 맑고 호탕한 표정은 천하의 여장부가 따로 없었고, 스님의 추상과도 같은 수행가풍은 이내 한국불교 선지식의 단면을 표출하는 듯 작심하여 불법(佛法)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지혜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했던가!
불법(佛法)의 꽃이라는 법문을 스님은 때로는 사자요, 때로는 동자승처럼 웅변하듯 토해냈고, 법당 앞 보리수나무에 대한 사연을 전할 즈음에는 스스로가 감회에 젖은 듯, 눈가에 이슬까지 맺히며 천상의 비구니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소원성취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보리수나무와 부처님 진신 사리탑
신도 다수가 보현스님의 원력으로 부처님 가피 체험하기도...

신비한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적멸보궁 보현사의 자랑은 수도 없이 많다. 법당의 부처님(대전시 지정 문화재)을 비롯하여 법당 앞에 중생구제의 화현으로 상징되고 있는 룸비니 보리수나무는 보현스님의 원력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없음으로 이미 많은 말을 던지고 있었다.

산등성이 정상에서 수려한 경관을 호령하고 있는 부처님 진신 사리탑도 보현사의 또 다른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보현사 신도는 물론 많은 불자 사부대중들에게 부처님 가피의 체험과 소원성취의 성불로 불법(佛法)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선지식 보현스님을 닮아서일까!
보현사 신도들의 불심(佛心) 또한 신심이 돈독하기도 유명하다. 보현스님과 30여 년 지기 신도회를 이끌고 있는 법보화보살을 비롯해 자비행보살과 류연서보살, 그리고 공양주 연주보살까지 필자가 기억하는 그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스님을 보필하고 시봉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허드렛일은 보현사 신도 처사들의 몫이다. 필자가 재차 방문한 그날에도 처사 한분이 법당 앞 잔디 다듬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들은 언제 어느 때든 도량에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는 즉시 달려와 스님을 보필한다. 웬만한 불심(佛心)이 아니고서는 발심하기가 쉽지는 않을 터, 보현사 신도들의 불심에 새삼 경외감이 드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어디 그 뿐이랴!
보현사의 식구 견공 두 마리에도 불심은 여지없이 묻어 있었다. 뙤약볕에 그들도 더울 터 우산이라도 펼쳐 더위를 식혀주고자 하는 스님과 신도들의 자상함에서 누구라도 보현사를 내방하는 불자라면 환희심이 절로 생긴다.

부처님 진신 사리탑에 새겨져 있는 보현스님의 필체에서도 한국불교의 진정한 선지식다운 장엄함이 묻어난다. 추상과도 같은 수행심의 발로이자, 수행가풍의 결정체로 스님의 출가를 발심하게 했던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상좌다운 기개를 엿보이게 한다.

보현사의 자랑은 또 있다.
스님의 원력과 기도로 부처님의 가피를 직접 체험한 신도들의 성불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다. 보현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불교 제일의 영가천도 기도영험도량으로 대전은 물론 전국에서도 그 유명세가 남다르다. 조상천도는 물론 신도들을 위해 스님이 직접 축원기도를 드리고 있으며 대다수의 신도 모두가 스님의 염력을 통해 병이 치유되고 소원성취를 이루는 등 성불을 직접 체험했다고 한다.

특히 보현사 법당 앞에 자라고 있는 보리수나무는 지금은 입적하신 영주 관음사 도기스님이 룸비니에서 직접 공수한 보리수나무로 그 의미가 매우 불법(佛法)적이다. 사실은 거의 죽어가는 나무를 보현스님이 지극정성 발원하고 기도하여 새 생명으로 잉태하듯 태어난 나무로 지금은 보현사 보현스님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부처님 가피의 성불도량으로 또한 신도 모두에게는 수행심의 발로가 되고 있다.

천하의 명당 터에 위치한 보현사 빙의. 우울증. 각종 신행상담
선지식 비구니 보현스님... 일붕 서경보 큰스님의 법(法)상좌로 출가

“요즘 현대인들은 풍족한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사소한 작은 것에도 불만을 표출하곤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은 생각하지 않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니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매사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화합승가의 적자답게 스님은 가득차고 넘쳐서 즐거운 것 보다는 부족해도 족함을 알고 부족함을 통해 만족을 얻는 지족의 삶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지녀야 할 덕목이라며 원효대사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을 강조했다. 또한 무릇 지도자란 본래 처음 그 마음의 초심(初心)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허공을 날아가는 새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늘 서있는 그 자리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삶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53선지식을 찾아 구도의 여행을 떠나는 선재동자를 향해 “모든 사람이 그대의 스승이며 선지식” 이니 지위와 신분 성별 노소를 가리지 말고 평상심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던 부처님 가르침의 표방처럼 실상은 스님이 그랬다. 온화한 표정으로 그러나 한국불교의 진정한 선지식다운 기개로 그 수행가풍은 영락없이 보현보살을 빼어 닮은 듯 했다.

예로부터 불가에서 부처님 법은 스승을 통해 제자에게 전해져 내려왔다. 방식은 가르침과 인가(認可)다. 스승은 제자를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스승 앞에서 자격을 갖추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선사들은 깨달음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 강사들은 학문으로 이를 증명했다.

스님이 그랬다. 전형적인 학승(學僧)과 선승(禪僧)의 경계를 스님은 거침없이 넘나들고 있었고, 대사각활(大死却活)이라는 옛 선사의 화두처럼 스님은 “크게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살 수 있다.” 는 옛 선사의 포효를 대신하고 있었다.

스님과의 담소를 마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래 무일(無逸)이 무일치(無逸治)라고 했거늘 초여름의 절정에서 만난 무더위가 오늘만큼은 왠지 무더위로 느껴지지 않았다. 엣 말에 무릇 목무설설(木無說說)이라는 말이 있듯, 법당 앞 보리수나무는 말없이 서 있음으로 이미 많은 말을 건네고 있었고, 귀경하는 내내 필자의 발걸음까지도 가볍게 했다.

멀리 문 밖까지 나와 미소로 필자를 배웅하는 스님과 보현사 신도들에게 한국불교의 찬란한 희망을 기대해 본다.

취재. 하태곤 기자(tkha715@dailywoman.co.kr)






선(禪)지식을 만나기가 그리 쉽던가! 때 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 7월 초, 인터뷰는 고사하고 언론에 얼굴을 내미는 것을 극구 사양했던 스님이 필자의 지극정성이 마음으로 통했는지 범부의 간곡한 청(請)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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