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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당국은 지난 4월 한 달간 육군 전 부대를 대상으로 병사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구타·언어폭력 등 가혹 행위 3900여건을 적발했다. 한 달 만에 '제2, 제3의 윤 일병 사건'이 될 수 있었던 사안을 뒤늦게 적발한 것이다. 군 관계자는 "가혹 행위의 경중(輕重)에 따라 휴가 제한과 영창, 징계 등 조치를 취했다"며 "언어폭력과 불필요한 내용의 암기 강요 등이 가장 많았지만 구타 등 폭력 행위도 상당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 6월 22사단 소속 임모(22) 병장이 총기를 난사해 부대원 5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도 군내 왕따나 관심병사 관리 부실 때문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병사들에 대한 관리 부실과 관심 부족은 잦은 의료 사고로도 이어지고 있다. 육군 22사단 소속 김모(22) 상병은 작년 7월 입대 직후부터 1년간 두통 등 고통을 호소했지만 뇌종양 치료를 받지 못해 치매 증상으로 악화된 것으로 3일 드러났다.



정형외과 치료를 받던 김 상병은 지난달 갑자기 구토와 복통 증세로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된 후에야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뒤늦게 민간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해 6월 육군 병사가 두통약만 처방받다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뒤늦게 민간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숨졌다. 또 지난 1월에는 당뇨 합병증을 앓던 훈련병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다.



군 당국은 그동안 "일제(日帝)시대 군대의 잔재(殘滓)인 구타는 거의 근절됐고 가혹 행위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지만 군내 실상은 오히려 정반대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지난해 발표한 '군 인권 실태 연구 보고서'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사 305명 중 '군대 내에서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8.5%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 조사 때보다 2.5%포인트 늘었다.



남이 구타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병사(17.7%)도 2005년(8.6%)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구타를 목격한 후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인 52.7%가 '못 본 척했다'고 했다. 가혹 행위를 당한 경험자도 2005년 9.6%에서 작년 12.5%로 늘었다. 특히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응답한 사람의 86.8%가 당한 후에도 '그냥 참았다'고 했다. 가혹 행위를 당하거나 목격한 병사들로부터 신고(보고)를 기다리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고질적인 군내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육군이 이번 28사단 사건의 참혹한 진상을 제때 발표하지 않고 은폐한 것은 군 지휘관들의 안이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저출산에 따른 병역 자원 감소로 인한 '관심병사'들의 현역 입대 증가와 군 간부들의 군내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안이한 인식과 대응이 군내 폭력과 군기 사건을 증가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군 소식통은 "학교 내 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계속 지적되고 있는데 이른바 '일진'들이 군에 입대해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군기는 군율(軍律)을 제대로 지키라는 것이지 고참의 부당한 지시와 괴롭힘까지 참고 따르라는 것은 아닌데 군기가 엉뚱하게 고참·후임병 간 사적 관계로 잘못 인식되면서 폭력적 군대 문화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군 관계자는 "군 간부와 병사들 간의 전우애와 규율은 군대를 유지하는 양대 요소인데, 지금의 우리 군은 내부 폭력과 잘못된 악습 때문에 둘 다 무너지고 있는 상태"라며 "누가 이런 군대에 지원해 나라를 지키고 싶겠느냐"고 했다. 하루빨리 폭력적 군 문화를 뿌리 뽑지 않으면 군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적 불신과 '병역 기피'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육군 영관장교 2명이 승진 체력 검정 결과를 조작했다 들통나자 상관을 협박한 혐의로 구속된 사실도 3일 뒤늦게 밝혀졌다. 육군에 따르면 6군단 소속 A(41) 소령은 작년 6월 체력 검정 때 3㎞ 달리기 종목에서 1급을 받았으나 병사를 시켜 특급을 받은 것처럼 허위로 등록했다.



A소령은 상관인 인사참모와 인사근무과장이 이를 알아채고 징계 절차를 시작하려 하자 직속상관 B(46) 중령과 모 신문 경기취재본부장인 C씨의 도움을 받아 '징계를 중단하지 않으면 제보받은 비리를 언론에 폭로하겠다'고 상관들을 7차례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간부가 상관을 협박한 혐의로 구속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군 기강 해이와 하극상의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태곤 기자(tkha715@dailywoman.co.kr)



우리 군이 전우애(戰友愛)도 군기(軍紀)도 잃어버린 채 내부 폭력으로 멍들고 있다. 지난 4월 28사단에서 발생한 윤모(23) 일병 사망 사건은 군내 구타와 가혹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군 당국은 그동안 병영 내부의 폭언과 폭력, 왕따 등 행위가 크게 줄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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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8-04 10: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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