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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이 남긴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응답하라! 대한민국 - [기자수첩]마지막까지 낮은 행보... 지도자 실종, 외국인에 기대는 우리의 현실
  • 기사등록 2014-08-20 00: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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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앓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교황에게 푹 빠졌다. 가톨릭 교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종교 지도자가 25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으니 그럴 수 있다 치지만 가톨릭 교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교황에게 환호와 지지를 보낼 정도였다. 그 이유는 권위를 내려놓은 소박한 태도와 약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낮은 자세와도 관계가 깊다. 교황은 국빈급 대우를 받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방한해서 만난 사람들은 정치·사회·경제 분야의 지도자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인 약자들이었다.

특히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위안부 할머니, 밀양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새터민, 장애인 등. 모두 우리 사회가 외면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눈높이를 낮춘 지도자를 보기 힘들었던 우리 국민들에게는 교황의 행보가 파격적이면서 존경스러웠다.

◈ 교황은 5일간 5번, 대통령은 124일 동안 단 1번

교황의 방한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더욱 특별했던 시간이됐다. 교황은 방한 5일 동안 세월호 유가족을 매일 만났다. 방한 첫날이었던 14일에는 공항 환영식에서 만나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내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잊지 말아달라고 울부짖는 세월호 유족들에게 이 메시지보다 더 위로가 되는 말은 없었다.

15일에는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직전 따로 시간을 내서 유가족과 생존 학생 등 10명을 만났다. 절정의 시간은 다음 날이었다. 교황은 16일 오전 광화문 시복미사 전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단원고 2학년 고 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를 만났다. 교황이 카퍼레이드 중 차에서 내리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교황은 김 씨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줬다. 김 씨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도와주시고 기도해주십시오"라는 당부화 함께 자신의 심정을 담은 편지를 전달했다.

넷째 날 17일에는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 씨의 세례 성사를 집전했다. 예정에도 없던 일로, 교황이 한국인에게 단독 세례를 준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방한 마지막 날인 18일에는 유족들을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초청해 또다시 위로를 전했다.

교황을 만난 사람들은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됐다는 반응이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교황이) 오셔서 한도 풀어지는 것 같다"며 "굉장히 저희 문제 관심이 많아서 평화적으로 해결해주리라 믿습니다"라고 기대했다. 용산참사 유가족 이충연 씨는 "너무 위안이 되고, 잊혀지는 이웃들, 아파하는 이웃들과 함께하면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셨다"며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힘을 모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미사에 참석한 한 세월호 유가족 역시 "세월호 때문에 아픔을 많이 겪었잖아요 전 국민이.. 그런데 교황님께서 오심으로 해서 많이 위로가 된 것 같아요. 하느님께서 아픈 마음을 많이 달래주신 것 같아요"라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한편으론 이 상황이 씁쓸하기만하다. 이억만 리 저 멀리서 날아온 외국인 지도자에게 우리 국민이 기대야 한다는 현실이 그러하다. '교황 앓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 기댈 지도자가 없다는 방증이다. 상대적으로 그만큼 우리 사회의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교황과는 다른 행보를 걸어왔다는 의미다. 지도자가 어떠한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의 환호와 지지를 받는지, 우리 사회·정치 지도자들이 교황의 행보를 찬찬히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 역시 교황을 향한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의 종교 지도자들은 어떠했나. 교황과 같이 약자들을 향한 종교가 되려 노력했던가.

한국의 두 추기경 역시 약자보다 가진자들을 대변하는 행동으로 비판받아 왔던 게 사실이다. 개신교 지도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어떠했나. 수천억짜리 초호화 예배당 건축, 논문 표절, 교회 세습, 재정 횡령 및 배임, 성추문 등 일으킨 문제만 해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불교 지도자들 역시 이런 지적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종교 간의 갈등도 보기 싫은 모습 중 하나다. 지난 15일 시복미사가 열린 광화문 큰처 청계천에서는 개신교인 200여 명이 가톨릭과 교황 제도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종교마다 양보할 수 없는 진리나 교리가 있고, 이 때문에 서로 갈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를 깎아내리며 정죄하기보다 누가 더 사람들이 기대하는 종교다운 모습을 보이는지의 선행 쌓기 경쟁을 할 때 종교의 영향력을 더 커질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증명했다.

가톨릭은 프란치스코 교황 취임 이후 세계적으로 교인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다시 교회를 찾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들을 감싸안는 모습을 보일 때 사람들은 그 종교에 기대게 돼 있고 교세 역시 자연스레 확장되게 돼 있다.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교황은 떠났다. 그가 최근 4박 5일처럼 계속 한국 사회에 위로와 화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황의 행보로 지친 마음에 잠시 위안을 얻었지만 현실은 바뀐 게 없다. 결국 우리 사회의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를 이루는 일은 우리 몫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1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힘으로 재생산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하태곤 기자(tkha715@dailywoman.co.kr)

최근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교황은 4박 5일간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18일 오후 로마로 떠났다. 그가 방문했던 곳마다 수만 명의 구름 인파가 몰렸고, "비파 파파" 즉 '교황 만세'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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