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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지나고 맞는 토요일 이른 아침, 곰소에는 눈발이 내렸다. 부안 백산에 사는 친구는 부안읍내는 쾌청한 날씨라는데 곰소작업실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시골 소꿉친구와 둘이서 중계교에서 서운봉을 거쳐 새재까지 갔다가 회귀하는 산행스케치였다. 중계교에서 서운봉을 거쳐 세재까지 갔다오는 산행 코스이다. 중계교 다리를 가기 전 길가에 차를 주차하고 간단한 준비운동을 한 후 출발하였다. 처음부터 경사가 무척 심했지만 산행거리가 짧아 다행이었다. 20분 정도 숨이 차도록 오르니 산 위 안개 속에서 쇠뿔봉이 윙크하듯 나타나고 이어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부안호가 눈에 들어 왔다. 부안호는 변산국립공원 내 산악지대인 중계계곡을 막아서 생긴 다목적 댐인데 부안호의 모습이 마치 두 마리 용이 서로를 바로 보는 형상이라고 했다. 수줍은 듯 서운봉의 여인 궁둥이바위가 부안호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 아래로 중계교가 보였다.


계속해서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스케치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친구가 준비해 온 따뜻한 물과 간식을 한 뒤 산행을 계속하였다. 변산반도 내에 외변산을 뺀 내변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멋진 풍경에 감탄사를 자아내며 잠시 숨고르기를 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내변산의 꼭지 '내변산의 배꼽 지점에 해당한다' 라고 나는 감히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를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한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지하에는 현재는 델포이박물관으로 옮겨진 ‘대지의 배꼽’, 옴파로스(Omphalos)가 있다. 여기서 배꼽은 중앙의 위치뿐만 아니라 생명, 자연, 상생을 상징한다. 물론 그리스인들만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잉카 제국의 마지막 수도인 쿠스코(Cuzco/Cusco) 또한 케추아어로 ‘배꼽’을 의미한다. 15~16세기에 살았던 잉카인들 역시 쿠스코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어쨌든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으로 두고자 했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자긍심은

특별해 보이지도 않는 이 돌에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한반도의 중앙, 지금은 휴전선을 머리에 이고 있는 접경지역 강원도 양구(楊口)를 국토 정중앙점이라 하는데, 여기 내변산의 정중앙점은 바로 이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오늘 내변산의 중계교를 통해 청림마을 방향의 서운봉과 세재를 올라가 스케치를 하며 무릎을 쳤다. 변산반도 내변산의 배꼽은 서운봉 지나고 새재가 변산의 중앙점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따라서 내변산의 위치뿐만 아니라 부안의 생명, 자연, 상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만 이런 생각을 가지는 건 아니겠지만 감히 내변산의 ‘배꼽’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눈이 그치며 맑은 날씨가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내변산의 우금바위에서 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흘러들어 온 산 자락이 동,서쇠뿔봉을 만들고 변산의 최고봉 의상봉을 지나 서해칠산 위도 앞 바다를 선물하고 쌍선봉과 낙조대가 월명암을 품고 그 끝으로 관음봉과 세봉이 있다. 또한 이 산자락을 사이에 두고 남으로는 용산천이 흐르고 북쪽에는 정읍천이 흘러 이들이 함께 만나 동진강을 품에 안으며 김제 평야로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장엄한 자리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이 땅 변산반도의 배꼽이라 말할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세상

의 중심을 일컬음이고, 신들이 거처하는 신궁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빨리 풍경을 화폭에 담고 싶어

서두러 하산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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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5-15 11: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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