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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암 마당에서 서해를 굽어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변산의 빼어난 봉우리 무리들을 7개월 동안 붙들고 있다. 변산8경 중 변산 제4경 월명무애(9m20cm×201cm) 작품의 마무

리를 위해 전북 부안군 내변산에 위치한 월명암(692년 부설거사 창건)에 이른 새벽 공기를 맞으며 월명암의 아침 안개를보기 위해 토요일 새벽 4시 30분에 남여치 주차장에 도착하

였다. 


월명암은 예로부터 경사가 심하고 험한 곳에 위치하여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다고 옛날에는 그렇게 알려진 사찰이다.

대략 왕복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이지만, 해뜨기 전에 도착해야 해서 무엇보다 신복리 숙소에서 다소 빨리 출발하였다. 아직은 많이 어두워 작은 손전등을 켜고 30여 분 오르

니 전등이 없어도 많이 익숙해져서 오를 수 있었다. 산길을 다 올랐을 무렵 바위 틈새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아침 공기 바람이 왜 그리 고맙던지. 불현듯 사는 것도 다 이런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산행 중에 아무도 없는 산길을 혼자서 오르려니 무섭기도 했지만, 오직 작품을 하기 위해서

는 무서움도 사라졌다. 이슬 같은 땀방울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힐 때쯤 쌍선봉 삼거리에 올라서니 굳이 들을려고 애쓰지 않아도 고요한 산사에서 들려오는 새벽 종소리에 귀 기울여

졌다. 400여 년 전 곡차(술)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진묵대사 (1562~1633)께서도 아마 그렇게 서둘러 이렇게 변산을 올랐으리라. 


왜구들이 불태운 월명암을, 부설거사 일가족이 전설처럼 성불한 수도처를 재건하여 최근 10여 년까지만 해도자연과 어울려 앉아있던 산사도 지금은 너무 불사가 많이 돼 옛 모습을 잃어버려 못내 아쉬움이 남는 건 나만 그럴까?

남으로 뻗어 내달리던 백두대간, 해지는 서쪽 드넓은 호남 벌판으로 곁가지 뻗어 서해를 얼싸안고 솟아오른 변산. 우람 하게 두 팔 벌려 하늘 가린 두 그루 굵은 전나무가 위용을 자랑하고, 전나무 사이로 내변산을 굽어보며 지장봉을 휘감아 돌며, 기암괴석 떡시루처럼 펼쳐진 마당바위를 돌아 멀리 부안호. 눈동자에 박혀오는 조무래기 봉우리들을 안고 도는 운

해를 어찌 감당할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실 같은 구름 얽히고 설켜 우주도 담을 큰 운해 이루고 있으니 병풍처럼 에워싼 변산 봉우리마다 힘이 솟는다. 역시 ‘내 고향 변산은 멋지

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새벽 산행에 힘들었는지 묵직해진 몸뚱이를 변산 운해에 풍덩 빠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 그림 그리는 직업병으로 뻐근한 오른쪽 어깨병까지 사라졌으면 하

는 마음이었다.

송골송골 맺히는 땀에 손수건 흥건히 젖을 쯤 신기루처럼 나타난 절 월명암 운해에 우러르던 봉우리 어느새 청림마을 발밑 치맛자락으로 깔릴 즈음 울려 퍼지는 새벽 목탁소리를

뒤로 하고 약속 때문에 절에서 아침 공양도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하산하였다.


내 몸과 마음 속 탐,진,치의 더러운 찌꺼기들이 모두 태우고 잡념을 버리고 내려온 듯하여 발걸음이 가벼웠다. 다음에는 두둥실 환한 달덩이가 떠오르는 보름날 밤에 다시 한번 올

라야겠다.

월명암

–월명무애에 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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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5-20 13: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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