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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34 대항리 바닷가에서 - –바다와 추억을 나누다
  • 기사등록 2021-06-17 1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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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의 소재지는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부안 lC로 나와 30번 국도를 따라 서남쪽으로 한참을 달리다 보면 우측으로 방조제가 보이고 바다 옆에 우뚝 솟은 새만금전시관을 지나

합구마을 방향으로 우회전 하자마자 다시 좌회전해서 100m정도 우측 바닷가 방향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방조제를 막기전에는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면 10km까지 갯벌이 드러났고, 어민들은 철마다 바다에서 백합이며 꽃게, 대하, 고둥. 갯지렁이 등을 캐냈다. 그 캐낸 어패류를 팔아 자식들 교육비를 했고 결혼까지 시킨 갯벌은 보물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부안 해창리와 고군산군도, 군산을 연결한 새만금방조제는 세계 기네스북에 가장 긴 방조제로 등재됐지만, 김제는 백합으로 유명한 뻘바다를 잃었고, 부안은 ‘반도’라는 명칭을 달기에 머쓱해졌다. 그러다보니 대항리는 새만금방조제에서 바다가 시작되는 첫 해변이 된 것이다.


3주 전에 직접 120호 화판을 차에 싣고 현장에서 시작했던 미완성 작업을 다시 하기 위해 두 번째 같은 장소를 찾았지만비가 내려 포기하고 추석날 성묫길에서 빠져나와 이 마을로

향했다. 대항리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드넓게 펼쳐진 해변과 어울려 서있는 해송들이 나를 반기듯 서 있었다. 작품 동안 내내 유난히 부드럽고 고운 모래 해변은 잔잔한 파도가 만

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들로 가득 차 있었고, 점점이 떠 있는 조그만 갯바위에는 하얀 갈매기가 나를 기다린 듯하였다.


짭조름한 바닷바람 맞으며 언덕배기 도로에 이젤을 펴고 앉았다. 처음 화판을 들고 현장작업을 하고 있을 때 바닷가 옆 황토밭고랑에서 마침 파 모종을 심고 있던 아줌마들이 둥그런 깔판을 엉덩이에 붙이고 작업을 하고 있다가 새참 시간에 찐 고구마 몇 개를 가져다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웬 할머니가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뭘 하냐”했다 한다. 아마도 나의 백발이 할머니처럼 보였나 보다.


시간될 때마다 현장을 3번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내가 작업하던 자리에서 가까운 지점 200여m를 가다보면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대항횟집 앞 바닷가 지방기념물 제 50호 ‘대항리 패총’이 있다. 대략 200평 정도 보이는 땅에 철제 울타리를 치고 바닥엔 잔디를 심어 놓았는데 잡초와 잔디가 껴안고 있고 이곳이 패총유적지라는 간판만 각지게 서 있었다. 


참으로 볼품없고 문화재 관리가 너무 소홀하지 않나 생각되었다. 대항리 패총은 선사시대 패총무덤이라 할 수 있는데 전라북도 천연기념물 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패총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류의 깝질이 쌓인 무더기로, 선사시대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67년에 확인된 이 패총의 크기는 사방 10m 내외로 두께는 60cm이다. 이곳에는 빗살무늬 토기 파편과 뗀석기가 발견되었으며, 이 유물은 선사시대에 이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패총 바로 앞 언덕엔 군산대학교 연수원이 위치해있다.


또한 내가 작업하던 장소에 오른쪽엔 폐업한 하얀색 모텔이 흉물스럽게 서있어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헤치고 있어 못내 아쉬웠다.

도로 건너편 좌측 언덕에는 팽나무 노거수(老巨樹)가 양반 자세로 자리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노거수를 마을을 지키는 신목으로 여기고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4차선 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노거수 옆으로 밭이랑이며 야트막한 야산들이 분위기를 살렸는데 지금은 도로가 풍경을 헤쳐 볼썽이 아니었다. 난개발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씁쓰름했다. 이 마을 당산나무로 섬김을 받는 노거수는 300년 정도 됐다고 한다. 예로부터 마을에는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당산나무로 주로 쓰였다.


대항리(大項里) 마을은 부안읍에서 행안, 하서를 지나 격포 방면으로 가다 보면 해창다리 건너, 새만금전시관을 지나 변산해수욕장 팔각정을 500여 미터 앞둔 지점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이다. 본래 부안군 산내면의 지역으로서 부안읍과 격포진으로 가는 큰 길목이었다 하여 한목 또는 대항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합구, 묵정동, 서두터, 자미동을 병합하여 대항리라 하고 산내면에 편입하였다.


1987년에는 산내면이 변산면으로 개칭되었다. 이 마을 북쪽 조개미(합구) 마을 못 미쳐 오른쪽으로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이 산 정상에는 ‘점방산 봉수대’ 터가 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6.25 무렵까지만 해도 봉수대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으나 6.25 이후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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