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78 마포리 유유마을 - –대(代)를 이어 지켜온 양잠옥을 지켜오다
  • 기사등록 2021-08-06 21:57:35
기사수정

마포 유유마을 73x73cm 한지에 수묵담채 2017

변산반도 서쪽 자락에 자리잡은 유유마을은 마포리에 속하는 산간마을로 마포교차로에서 마포 천주교 공소를 지나면 우측으로 아담한 마포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 입구의

가로수부터 눈길 가는 곳곳마다 온통 뽕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유유동은 말 그대로 변산의 제일 으뜸 마을이다.


선비가 놀다 갔다고 해서 ‘유유(遊儒)’라는 이름이 붙은 유유마을은 수려한 내변산이 마을을 양쪽으로 둘러싸고 있다. 누에 모양으로 생긴 들에는 뽕나무 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옹기종기 주택들이 형성되어 있다. 6월이 되면 이 마을의 자랑인 뽕나무가 밭에 즐비하게 심어져 있고 가로수로도 심어져 있으며 산수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선비들이 유유자적하며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조선조 중엽에 김씨 성을 가진한 선비가 유배되어 오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때에 산 넘어 도청마을 갑남산(甲南山)에서 수도하던 고승

한 분이 있었다 한다. 그 고승의 가르침을 받은 동네 사람들이 서로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화목하게 살게 되니, 이 고승은 다른 마을에 가서 수도를 하며 살아가겠다며 산을 넘어 유유동 마을로 왔다고 한다. 그 후 고승이 계신다는 소문이 이웃에까지 전해지자 곳곳에서 뜻있는 선비들이 찾아와 고승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으며, 주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풍류를 즐기기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터를 잡고 산을 개간하며 정착을 하니 큰 마을로 형성되었고 그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살던 골이라 하여 ‘놀 유(遊)자, 선비 유(儒)자, 고을 동(洞)자’를써서 유유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고승이 갑남산을 넘어 온 산줄기에 볼록한 등성이가 있는데 이것은 고승이 목탁을 치며 내려왔다고 하여 목탁등이라 부르고 있다.


유유마을의 ‘뽕’에 관해서는 『대동지지(1861년)』에 토산품이 ‘뽕’으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양잠업에 종사해온 유유마을의 역사를 살펴보면 뽕나무로 150여년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누에마을이다. 누에는 작물보호제에 아주 민감한 곤충으로서 깨끗한 곳에서만 키울 수 있는 곤충이다. 2003년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대한민국 청정지역으로 지정받았으며 부안 청정 누에타운 특구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마을에서 전국대회를 개최했고 공판장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며 스리랑카 농산부장관이 방문한 이력도 있으며 지금은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자연 단위 마을로는 전국 최대 누에 생산마을이다. 30여 가구가 뽕나무를 가꾸고 있으며 해마다 5천만 마리의 누에를 기르고 있는 말 그대로 풍요로운 마을이라서 전국에서 귀농 귀촌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으뜸 마을이다.


작품 속의 풍경은 처음 스케치해서 그릴 때에는 뽕나무가 제법 날씬하게 큰 나무였는데 한 해 지나서 갔더니 뽕나무는 온데간데없이 뽑혀 없어지고 작은 뽕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올 겨울에 다시 한번 재작업하고 싶다.

끝으로 청정지역에서 자란 싱싱한 유유마을의 오디, 그리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마을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유유마을의 주민들은 참 행복해 보였다. 선비들도 풍류를 즐겼던 이런 축복의 마을에 많은 분들이 시간 내서 꼭 즐기시면 좋겠다. 오디도 먹고 누에도 보고 체험도 하고 다양하고 신나고즐거운 시간 가져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며 붓질을 멈춘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1-08-06 21:57:35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칼럼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