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창은 어렸을 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은 후, 이당 김은호에게 동양화를 배워 근현대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했다. 1931년 제 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처음 입선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는 연 4회 특선하여 추천작가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운포라는 호를 대신하여 운보라 쓰기 시작했으며 일본화풍 청산을 위해 적극적인 모색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전쟁 때 군산으로 피난 가있는 동안 반추상과 입체주의를 도입한 새로운 동양화를 실험하면서 점차 추상과 구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폭넓은 창작 세계를 보여주었다. 1957년에 새로운 민족예술의 개척을 목적으로 한 백양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김기창은 '군마도'라는 소재를 즐겨 그렸다. 여러 마리의 말이 무리를 이룬 가운데, 서로 방향을 달리 하여 앞모습, 뒷모습, 옆모습이 골고루 표현되어 있고, 운동감, 즉 '동세'를 표현한 방식이 매우 탁월하다. '역동감'을 표현하는 한국화의 교화서와 같은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의 여러 <군마도> 작품 중에서도 특히 1955년작 <군마도>는 단연 최고로 손꼽힐 만큼 압도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김기창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폐허를 딛고 재개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위원 자격으로 1956년 이 작품을 출품했다.
전후 새로운 열정으로 충만했던 작가의 심정이 표출되는 듯 하다. - 글. 정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