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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 이후...대낮에 외출하기도 무서운 세상 -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 피의자 서진환, 여성 수사관에 “흥분된다” 이런 자가 활보하다니...
  • 기사등록 2014-05-28 1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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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명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의 피의자 서진환.

“당시 정계와 언론이 떠들썩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변한 것이 없고, 우리 가족은 고통스럽고, 내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다.”

2012년 여름 성폭행 전과 11범 서진환에 아내를 잃은 박귀섭 씨(41). 깊게 내쉬는 한숨이 현재 그의 심정을 대신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여가 지난 지금, 아내의 손을 잡고 유치원을 다녔던 큰아이는 초등학생이 됐고, 아직은 엄마 등에 업혀 지낼 작은아이는 할머니 품에 있다. 그리고 두 아이는 지금까지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비극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8월 밤새 음란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운 서진환은 비아그라 2알을 까먹고 거리로 나섰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유치원 통학버스에 자녀를 태워 보내던 A 씨였다. 그는 문이 열린 A 씨의 집으로 들어가 기다렸다 성폭행을 시도했고, A 씨가 저항하자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결국 서진환은 필사적으로 현관으로 도망가는 A 씨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4차례 찔러 살해했다.

박 씨는 법이 아내를 살해한 서진환을 심판해 줄 것이라 믿었다. 2012년 11월 22일 열린 1심 재판에서 법원은 서진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는 법정에서 박 씨의 손을 잡고 위로를 건넸다. 박 씨는 “인도적 차원에서 사형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재판부가 서진환이 부족하게나마 반성의 기미를 보인다고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서진환은 여성 프로파일러와 상담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당신을 보니 다시 흥분이 된다’는 말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판사 앞에서는 ‘죄송합니다’ 하더라. ‘반성’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어디에 있나.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토로했다. 이후 2013년 1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서진환이 상고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현재 서진환은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한편 박 씨와 아이들은 사건 발생 한 달 뒤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 아내와 아이가 있던 천국 같았던 집은 지옥이 됐다. 박 씨는 “범죄 피해자 구제는 심리치료와 금전적인 부분을 지원한다. 금전적인 지원은 목적을 벗어나는 부분에 사용할 수 없다. ‘주거비 지원’이면 주거비에만 사용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현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가장 어려운 것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범죄 피해자 구제라는 것에 ‘맞춤’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야 아이들 할머니가 돌봐주고 있지만 나와 같은 피해자가 또 발생한다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2013년 2월 18일 박 씨와 유족들은 “중곡동 살인사건은 사법부와 검찰, 경찰의 잘못으로 발생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 1000만 원의 소송을 냈다.

전자발찌를 찬 채 서울 도심을 활보하다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실제로 사건 당시 서진환은 2004년 성폭행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7년을 복역한 뒤 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상태였다. 심지어 서진환은 A 씨를 살해하기 13일 전에도 면목동에서 또 다른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당시 경찰은 면목동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서진환의 DNA를 확보해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지만, 그때 국과수가 보유한 DNA 정보엔 서진환의 자료가 없었다. 범행 현장에서 확보한 용의자 DNA는 경찰이 관리하고, 수형자들로부터 채취한 DNA 정보는 검찰이 관리하기 때문이었다. 막을 수도 있었던 제2의 피해를 검경이 DNA 자료를 공유하지 않아 놓쳤다는 사실에 박 씨의 허망함은 더해갔다.

그러나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에서 박 씨는 패소했다. 법원은 “수사기관의 실수는 인정했으나 사건과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다”고 판단했다. 박 씨는 “법률 조항의 잘못된 적용으로 서진환이 3년 일찍 출소한 점, 검경 간 DNA 정보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점의 책임을 물어 나라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그리고 패소했다”며 “하지만 다시 항소를 한 상태다. 사실 생계 때문에 재판 진행상황은 나도 잘 모른다. 이번 세월호 사건도 그때와 같은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태곤 기자(tkha7815@dailywoman.kr)

지난 2012년 8월 20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골목. 유치원생 자녀를 배웅하러 나간 주부 A 씨는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숨어들어온 괴한의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다가 무참히 살해됐다. 일명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사건의 범인은 인근에 살던 전자발찌를 찬 성폭행 전과 11범 서진환(44)이었다. 이 사건은 검경 간 성폭행범 DNA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는 사이 서진환이 벌인 두 번째 범행이었다는 사실에 여론은 분개했다. 이후 우리사회는 얼마나 변화했을까.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 그 이후를 따라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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