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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 화백 100회 특집 연재 - 50 계화도 - –채색되지 않은 계화도의 들녘
  • 기사등록 2021-07-06 13: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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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의 봄 67x198cm 한지에 수묵담채 2019

계화도는 이름처럼 원래는 위도가 부안 땅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군에서 제일 큰 섬이었으나, 1963년 박정희 정부 시절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으로 육지로 탈바꿈한 지역이다. 계화도에 들어서기 전 계화교 바로 앞 논두렁에 일렬로 식재되어 우뚝 서 있는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계화도를 화폭을 담기 위해서 나섰다. 다소 바람이 불었지만 드넓은 간척지엔 유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뒤로 계화 소나무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보기만 해도 상쾌했다.


모처럼 넓은 들판의 소나무를 정면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논과 논 사이 시멘트 신작로 길과 뚝방길이 있는 계화도를 오랜만에 찾아온 것이다. 다소 날씨는 흐리면서 채색되지 않은 오묘한 하늘이었지만, 구름에 점점 더 구름이 짙어지는 하늘을 보며 계화도에 도착하기 전 논두렁에 털석 주저앉아 스케치를 하였다. 비록 담고 싶은 풍경 앞에는 유채꽃이 멀리 있어서 소나무 앞으로 옮겨 그렸고, 방풍림 소나무사이 갈대밭 뒤로 옹기종기 보이는 계화도 시골 풍경을 담(淡)하게 담아보았다.


계화도 방풍림 소나무는 영화 ‘안시성’ 촬영지로 더욱 유명 해졌고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1963년대 간척사업을 통해서 육지로 바뀌면서 심어 놓은 소나무이다. 처음에는 농사짓기를 목적으로 제방위에 방풍림을 만들었다 한다. 일출 때의 소나무와 소나무 반영이 멋진 풍경을 선물해 주는 곳이기에 많은 사진작가들의 출사 장소로도 유명해졌다고 한다.  계화도는 원래 변산반도 북쪽에 위치한 아담한 섬이다.


1963년부터 1968년까지 방조제가 조성이 되면서 육지가 되었고, 주변의 간석지는 농경지로 변화된 곳이다.

계화도, 문포, 돈지 간에 방조제를 쌓아 예전에 바다였던 곳을 지금의 광활한 평야로 만들었다. 그 유명한 부안 ‘계화도 간척지 쌀’ 계화미는 이렇게 조성된 계화도 간척지에서 생

산된다.


동쪽은 동진면(東津面), 남쪽은 행안면(幸安面)·하서면(下西面)과 접해 있으며 5개 리(里)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일반사람들에게 계화도는 대규모 쌀이 생산되는 곳이란 인식이 강했다. 바다를 메워 간척한 이 평야는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로 간척하여 만든 땅이 무려 약 139,000평이나 된다고 한다. 또한 바다를 막아 생산된 쌀이 맛이 좋아 ‘계화미’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쌀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1976년 9월 계화도(界火島)가 계화리가 되고, 행안면에 계화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계화출장소가 계화면으로 승격하였다. 문화재로는 간재선생유지(艮良齋先生遺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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