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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준 선물, 얼후의 선율을 따라 발길이 닿은 곳 - - 한국의 ‘얼후(二胡)' 1세대 연주자 김지은
  • 기사등록 2019-01-28 21: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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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집 앨범 'CROSSOVER ME' 수록 사진 . 김지은의 얼후 단독 콘서트 컨셉 사진

카리스마(Charisma)는 그리스어로 ‘신의 은총’을 의미한다. 카리스마의 어원에는 ‘선물’이라는 뜻도 있고, ‘마땅히 있어야 할 것’ 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현대 음악세계를 아우르는 신이 준 선물, 얼후의 선율을 따라 발길이 닿은 곳에서 음악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완벽한 그녀, 김지은을 만나보았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인상 깊은 그녀는 깊고 진한 음색의 얼후를 꼭 닮아있었다.





1. 악기 ‘얼후’에 대한 소개 한 말씀



얼후는 중국의 민족 악기로 우리나라의 해금과 비슷한데요, 얼후의 최초 명칭 또한 ‘해금’이었습니다. 명·청 시대에 이르러 민족의 문화 교류 및 지방 희곡과 민간음악이 활발해 지면서 중국 각지에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세기에 민족음악가 ‘유천화’에 의해 또 한 번 개량이 되었고 새로운 연주법으로 독주용 악기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해금은 우리 민족의 한을 잘 표현 할 수 있는 소리를 가졌다면 얼후는 악기 개량을 통해 바이올린과 같은 쇠줄이 달려 좀 더 대중적인 소리가 나는 반면 뱀가죽을 통해 나오는 먹먹한 소리가 동양적인 느낌을 한껏 담고 있습니다.



2. 해금 전공자에서 어떻게 얼후 연주자가 되었는지?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해금 전공 2학년 재학 중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한중 교류 연주회에서 얼후라는 악기를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이후 우연히 기회가 되어 대학교 2년 재학 중에 휴학을 하고 2000년도에 1년간 ‘얼후’라는 악기를 배우기 위해 중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중국에서 4년의 기간을 오직 얼후 공부에 쏟게 되었습니다. (웃음) 이후 중국에서 앨범을 제작하게 되어 드디어 2010년에 많은 인사들의 도움으로 1집을 냈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 지금까지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최근 1, 2년간 스스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거나 욕심내어 활동하지 않고 한 발짝 뒤에 서서 더 멀리 보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해금을 잠시 쉬어야하는 부분에 있어 불안함도 있었고 대한민국 전통악기 연주가가 중국의 전통악기를 배우는 것에 대해 주위의 걱정하는 모습과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걱정과 달리 얼후와 해금을 같이 전공하면서 두 악기의 연주법이 결국 오늘날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하기 까지 많은 고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4. 어려움을 이겨내기까지의 과정과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타인의 눈치를 많이 봤지만 한 편으로는 전공분야에 있어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일을 열심히 이뤄갔던 것 같아요. 결과를 통해 한 편으로는 안 좋은 소리를 듣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응원의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요. 어려웠던 시간이 흘러가면서 현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중국에서 2년 정도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같이 유학하던 후배들과 함께 ‘라얼후(얼후를 연주하다 의미)’라는 앙상블을 창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1회 라얼후 연주회’를 중국에서 개최했을 때, 음악계의 유명 중국 인사들의 도움으로 중국 관객들의 큰 호응 속에서 한국 전통악기 해금도 선보이고 한인교포들에게도 양질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서 매우 뜻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 김지은 제1회 독주회 표지.

5. 연주가가 아닌 가정에서 어머니로서의 모습은?

예전에는 공연이나 연주회가 있으면 집에 많이 못 왔어요. 대학교의 방학 때가 되면 거의 1~2달 씩 중국에 있다 보니 가정 안에서는 엄마의 자리를 많이 비웠습니다. 또 프리랜서로 일하다보니 불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어 한 가정의 엄마로서는 거의 빵점이었지요. (웃음) 지금에 와서 그 당시의 저를 볼 때 독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가정에 충실할 수 없다면 가족들에게 차라리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완벽한 연주자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도 제가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마음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최근 아이들이 커가면서 연주가로서 뿐 아니라 엄마로서 가정에도 충실해야 할 책임을 느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저도 함께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이들과 남편에게 충실하고 더욱 사랑을 받는 엄마와 아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려고요.

6. 요즘 화두가 통일인데,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문화교류 계획이 있다면?

정치인이 아니기에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 음악으로 얘기한다면 남과 북이 서로 문화교류를 통해 하나가 되면 좋겠습니다. 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많은 단체들과 함께 예술가로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기회가 허락된다면 저도 주위의 얼후 및 해금 연주자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가서 연주 할 것입니다.

7. 앞으로 연주자로서의 계획은?

크게 두 가지 인데요, 먼저는 가정 안에서의 ‘엄마’로서 또한 대중들에게는 ‘음악인’으로서 삶과 타협을 해야 하는 부분에 숙제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음악에만 집중 할 때와 달리 이제는 음악을 하는 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 답답한 부분도 있네요. 밤새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가정에서의 역할을 생각하면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앞으로도 조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앞으로도 영화나 대중가요 등 장르 가리지 않고 얼후가 필요하다고 하면 어디든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장르들이 매우 다양한데요, 영화와 드라마, 연극, 가요, 게임, 종교, 트로트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며 각 음악에서 얼후의 매력이 묻어나도록 작업하는 일이 재밌답니다. 현대 음악세계는 매우 넓고 모든 장르들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김지은은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해금 강사 및 중앙대학교 얼후 특강 강사 역임하였고, 중국 총리 ‘원자바오 한국방문 기념 축하공연’ 진행 및 사회와 KBS '국악한마당', '유희열의스케치북' ,'콘서트 7080',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 외 다수 출현, 현재 인터넷 강의 '뮤직필드' 얼후 강사, 얼후 앙상블 ‘라얼후’ 대표이며 중요 무형 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전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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